거북선
거북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413년에 “왕이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는 『태종실록』(권25, 13년 2월)의 기사이다. 그러나 당시 거북선의 형태와 규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거북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임진왜란 직전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1592년 2월 8일에는 거북선에 사용할 돛베 29필을 받았으며 3월 27일에는 거북선에서 대포 발사를 시험하였다고 되어 있다. 거북선은 사천해전에 처음 출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1592년 6월 당포해전의 승전보를 임금께 올린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는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입에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서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여 거북선의 구조와 특징이 잘 드러난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인 이분李芬의 『행록行錄』에는
“거북선의 위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는 십자모양 세로細路가 있으며 … 뒤에는 거북꼬리가 있고 꼬리 밑에는 총혈銃穴이 있으며 좌우에 각 6개의 총혈이 있다. 대개 그 모습이 거북이와 같아서 거북선龜船이라 한다.”
고 되어 있다. 특히 이분은 임진왜란 중 여러 차례 한산도에 가서 직접 거북선을 관찰하였기 때문에 이 기록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 당대의 다른 문헌 기록들에도 거북선이 등장한다. 1592년에 세자를 호종했던 간재 艮齋 이덕홍 李德弘의 『간재집艮齋集』에는 귀갑선에 대한 기록과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수록된 『귀선도설龜船圖說』에는 ‘전라좌수영 거북선’ 및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해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통제영 거북선이 충무공 당시 거북선의 기본적인 틀을 계승하였다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