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비교
임진왜란 당대의 조선측 문헌에는 거북선 개판이 철판이었다는 기록이 없다. 거북선이 철갑선鐵甲船이었다는 기록은 일본측 문헌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구한말에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잘못된 인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한국에서 임진왜란 시기에 조선에서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민족적 자부심과 섞이면서 국민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결국 1ㆍ2차 거북선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판을 철갑으로 복원하였다.
1ㆍ2차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200년 후에 저술된 [이충무공전서]의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기본 모델로 복원한 것이었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2차 거북선이 노후되어 퇴역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3차 거북선을 건조할 계획을 세웠다. 이 거북선은 용두에서 총통을 발사하고 기동機動, (노젓기)과 총통 발사는 포판 현측舷側에서, 활쏘기는 상포판에서 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선미船尾를 최대한 짧게 하고 문헌상에 보이는 귀미龜尾를 선미의 대노大櫓로 복원하였으며, 1ㆍ2차 거북선에 없었던 함교艦橋를 선미에 설치하고 철갑을 없애기로 했다. 그리고 이 거북선을 ‘임진왜란기 거북선’으로 명명하였다
| 제원 | 용두형태 | 내부구조 | 선미 | 개판 | |
|---|---|---|---|---|---|
| 2차 거북선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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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 왜란기 거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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